경제학은 오랫동안 수학적 모델과 이성적 예측을 통해 미래를 설명하려 해왔다. 하지만 현실의 경제는 언제나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은 완벽한 정보를 가진 채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케인스는 20세기 초, 전통 경제학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이후 케인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확장한 학파가 바로 후기케인즈학파(Post-Keynesian Economics)다. 이들은 경제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경제 주체들은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특히 기대와 심리, 제도적 배경이 경제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통화정책, 투자, 고용, 금융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분석 틀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후기케인즈학파가 바라보는 경제의 불확실성과 기대의 의미, 그리고 이 관점이 현대 경제정책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서술해본다.
1. 본질적 불확실성과 경제 행동
후기케인즈학파는 ‘불확실성’이 단지 정보의 부족이나 계산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에 내재된 구조적 특성이라고 본다. 이들은 프랭크 나이트가 말한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의 구분을 계승하며, 전자는 확률 계산이 가능한 상황인 반면, 후자는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고 본다. 실제 경제에서 투자자나 소비자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확률적 기대조차 세우기 어렵다. 예컨대 기술 혁신, 전쟁, 팬데믹, 정치적 변화는 그 발생 자체도 예측하기 힘들고, 일단 발생하면 경제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후기케인즈학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중심에 놓고 경제를 설명하며, 주체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추측과 기대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본다. 이로 인해 경제는 항상 동요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균형보다는 불균형이 일상적인 상태가 된다.
2. 기대, 심리, 그리고 거시경제의 역동성
후기케인즈학파는 기대(expectations)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행동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고 본다.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예상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투자, 소비, 고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케인스가 강조한 ‘동물적 영혼(animal spirits)’은 이 학파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거나 충동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의미하며, 투자자들의 낙관이나 비관이 전체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들은 신용 팽창기에는 과도한 낙관으로 버블이 형성되고, 위기 시기에는 급격한 비관이 공황을 야기한다고 본다. 이런 메커니즘은 단순한 수요-공급 조정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기케인즈학파는 거시경제를 ‘동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으로 바라보며, 구조적 불균형과 주기적 충격을 필연적 요소로 받아들인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은 경기 조정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기대를 안정시키고, 장기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도 필요하다.
3. 정책과 제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
후기케인즈학파는 불확실한 경제 환경 속에서 정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균형으로 수렴한다고 보지만, 후기케인즈학파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균형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들은 특히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과 고용의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중시하며, 적극적 재정 지출, 완전고용을 위한 정책 개입, 금융 규제 강화 등을 주장한다. 또한 단기적 경기 조정뿐만 아니라, 제도적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경제정책의 핵심 요소로 본다. 예컨대 고용 안정성, 주거 보장, 교육 기회의 확대 같은 정책들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장기 기대를 안정시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효과를 가진다. 후기케인즈학은 경제를 단순한 수치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기대와 감정, 제도와 역사 속에서 움직이는 복잡한 유기체로 인식한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과 같은 고변동성 시대에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경제는 수치와 공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대, 불안, 낙관, 두려움이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고, 이들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후기케인즈학파는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을 중심에 놓고 경제를 해석하며, 안정된 제도와 예측 가능한 정책이야말로 시장의 신뢰를 지키는 기초임을 강조한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 경제학은 더 이상 기계적인 균형 이론에 머물 수 없다. 후기케인즈학은 바로 그 한계를 넘어,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경제학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