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회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흐름이 있다. 바로 통화주의(Monetarism)다. 대표적인 학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가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통화량의 변화가 경기와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스태그플레이션—물가는 오르는데도 경기는 침체되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던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이론으로 주목받았다. 프리드먼은 고전학파의 자유시장 중심 이론을 계승하되, 통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번 글에서는 통화주의의 핵심 개념과 그 이론이 실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1. 통화량이 경제를 움직인다: 수량이론의 부활
통화주의의 중심에는 고전경제학에서 비롯된 ‘화폐 수량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통화량이 증가하면 반드시 물가도 비례해서 오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프리드먼은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통화량의 안정적인 증가가 장기적으로 경제의 건강한 성장을 유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라고 단언하며,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돈을 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고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통화주의는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 개입보다는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규칙성을 중시한다.
2. 경기 조절보다는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
프리드먼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경기를 조절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정책은 시차(lag)가 있기 때문에, 정책이 시행될 즈음에는 경제 상황이 이미 달라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불황기에 정부가 부양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효과가 나타날 때쯤에는 경제가 이미 회복세에 접어들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오히려 과잉 유동성이 생겨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통화주의자들은 이런 ‘정책 시차’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 ‘규칙에 따른 정책(rule-based policy)’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통화량은 매년 3~5% 범위 내에서만 증가시키는 방식처럼 예측 가능한 틀을 마련하면 시장도 그에 맞춰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채택한 정책 기조와도 연결되며, 인플레이션 억제와 신뢰 회복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 통화주의의 현실 적용과 그 한계
통화주의는 이론적으로는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문제점도 드러냈다. 첫 번째는 통화량 자체를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화폐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신용카드, 전자화폐, 금융 파생상품 등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통화량’의 개념이 모호해졌다. 둘째, 경기 침체기에 통화량을 늘리더라도 사람이나 기업이 불안감을 느끼면 소비나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케인즈가 지적한 ‘유동성 함정’과 연결되며, 단순히 돈을 많이 푼다고 해서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통화주의가 지나치게 시장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받는다. 자유시장의 자율성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전제는 금융위기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대규모 재정지출과 저금리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는데, 이는 통화주의적 접근이 아닌 케인즈주의적 대응이었다.
통화주의는 20세기 후반 경제정책의 중심축이었고, 특히 인플레이션 억제에 있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이론 역시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만능 해법은 아니었다. 경제는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제도적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단일한 변수—예컨대 통화량—만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통화주의는 시장의 자율성과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시각을 제공하지만, 이를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 시대와 상황에 맞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복합적인 접근이다. 경제학은 단순한 원칙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지적 노력이다. 통화주의 역시 그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