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은 오랫동안 국가의 발전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였다. 국내총생산(GDP)의 증가, 산업 생산량 확대, 수출입 증가율 등은 정책 성과의 지표이자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성장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한한 성장이 과연 가능한가? 성장의 이면에 감춰진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사회적 불평등은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지속가능한 성장론(Sustainable Growth Theory)은 경제학이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 성장을 재정의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전환 방향을 살펴본다.
1. 성장 패러다임의 한계와 전환의 필요성
전통 경제학은 자원의 대체 가능성과 기술 혁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원이 부족해지면 대체 기술이 등장하고, 시장은 스스로 조정 기능을 통해 지속적인 생산 확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전제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후변화, 생태계 붕괴, 물과 토양의 오염, 대기 질 악화, 생물다양성의 급감 등은 단순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지구의 생태적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사용하는 현재의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바로 이 한계를 인식하고, ‘성장’의 개념을 양적인 확장에서 질적인 전환으로 이동시키고자 한다. 즉, 더 많은 생산과 소비보다는 더 나은 삶의 질, 더 공정한 자원 분배, 더 건강한 환경이 성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성장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정치적 상징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2. 대안 지표와 성장의 재정의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GDP 중심의 성장 지표가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GDP는 단지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측정할 뿐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파괴나 사회적 불평등은 반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불로 인한 복구 작업, 교통사고로 인한 의료 지출, 소비 촉진을 위한 광고 지출 등도 모두 GDP 증가에 기여하지만, 그것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에 따라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새로운 지표 개발을 촉진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인간개발지수(HDI), 진정한 발전지표(GPI),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국가행복지수(GNH) 등이 있으며, 이들은 소득, 교육, 건강, 환경, 주관적 행복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런 지표들은 경제학이 단순히 ‘얼마나 많이 만들고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만들고 쓰느냐’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며, 성장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즉, 성장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3. 정책과 사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확보 방안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지 지표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책과 제도의 전반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환경적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순환경제 촉진, 탄소세 도입, 생물다양성 보호 등 실질적인 생태적 전환이 요구된다. 동시에 사회적 측면에서는 기본소득, 노동시간 단축, 교육 및 보건 서비스의 보편화, 지역 공동체 강화와 같은 포용적 성장 전략이 중요해진다. 경제 체계 자체도 고속 성장 중심에서 균형 성장과 안정 성장, 나아가 ‘탈성장(degrowth)’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 기업 역시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 가치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중심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시민사회의 인식 전환, 소비자 행동 변화, 세대 간 연대 등 사회 전체의 가치관 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이처럼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 해결책을 전방위적인 시스템 전환에서 찾고자 하는 학문적·사회적 흐름이다.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단지 ‘성장을 멈추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될 수 없는 성장은 더 이상 성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성찰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과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조건을 무시한 성장 추구는 결국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이제 경제학은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중심 질문으로 삼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론은 그러한 질문에 응답하는 새로운 지적 흐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