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은 단지 자본의 축적이나 기술 진보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가 비슷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고 인적 자본도 유사한데, 경제 성장 속도와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제도경제학은 이 질문에 대해 ‘제도(institutions)’의 차이를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란 단지 헌법이나 법률 같은 공식적 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작동하는 규범, 관습, 신뢰, 정치적 권력구조 등 경제활동을 둘러싼 포괄적인 규칙을 포함한다. 더글라스 노스(Douglass North)는 제도가 인간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는 ‘게임의 규칙’이며, 이 규칙이 어떻게 설정되었느냐에 따라 자원의 배분, 인센티브 구조, 혁신의 동기 부여에 차이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제도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자, 때로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1. 포괄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
제도경제학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 중 하나는 ‘포괄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의 구분이다.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은 『Why Nations Fail』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제도적 차이가 국가의 부와 빈곤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라고 주장했다. 포괄적 제도는 시민들에게 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며, 경제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반면, 착취적 제도는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경제적 이익을 사유화하는 체제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창의성과 혁신이 억제되며, 전체 사회의 성장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식민 지배를 겪은 국가들 사이에서도 식민지 시절에 어떠한 제도가 이식되었는가에 따라 오늘날의 경제 발전 양상이 극명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기준으로 역사적으로 상이한 제도가 뿌리내리면서 장기적으로도 큰 발전 격차가 발생하게 된 사례가 있다.
2. 제도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
제도는 단지 선언적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과 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근본 틀이 된다. 예를 들어 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누구도 장기적인 투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 부패가 만연한 환경에서는 정당한 경쟁보다 정실 관계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는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초래한다. 또한 법의 지배가 약한 국가에서는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시장이나 기업간 협력도 원활히 작동하지 못한다. 반면, 안정적이고 투명한 제도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고, 경제 주체들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계획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 국제 투자 유치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인프라 구축 같은 공공서비스의 질 역시 제도의 성격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국민의 삶의 질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3. 제도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제도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한번 특정한 제도나 규칙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그에 익숙해지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의 개혁은 단순히 법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힘의 균형, 인식의 변화, 정치적 의지가 함께 작용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발전 역시 포괄적 제도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가 없다면, 경제적 제도 역시 폐쇄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적인 경제개혁 사례는 대개 정치적 참여 확대, 시민 사회의 성장, 정보의 투명화와 함께 이루어진다. 제도는 살아 있는 구조이며, 사회적 요구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집단의 이익에 고착화되어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경제 발전의 동력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의 축적에만 있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고 분배하며, 어떤 방향으로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게임의 규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도경제학은 이러한 규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가 단지 성장률이나 무역 수지 같은 숫자만이 아니라, 그 숫자를 가능하게 하는 ‘틀’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의 질은 곧 국가의 질이며, 장기적인 경제 번영은 바로 이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