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이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의제가 되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극단적 기상현상이 빈발하며, 해수면이 상승하고 생태계가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경제 시스템은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때 단순히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 전환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용 구조, 산업 기반, 지역경제, 사회 계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사회적 격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이미 취약한 계층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친환경 전환의 필요성과 함께, 그 전환 과정이 공정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이 글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왜 필요한지, 어떤 정책과 메커니즘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경제학이 이 개념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1. 기후 대응의 사회적 불평등
기후위기는 그 자체로 불평등한 영향을 미친다. 저소득층은 에너지 비용 상승, 주거 취약성, 건강 위험 등에 더 많이 노출되며, 농촌과 개발도상국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감당할 자원이 부족하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책임은 역사적으로 산업화된 국가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라는 담론을 낳았으며, 정의로운 전환은 이를 구체적 정책으로 연결하는 실천적 접근이다. 예컨대 석탄 산업의 축소는 온실가스 감축에는 기여하지만, 해당 지역 노동자와 공동체에겐 실직과 경제 붕괴라는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러한 불균형을 고려해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영향을 받는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고, 대체 일자리 제공, 재교육, 지역 경제 회복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 고용정책, 지역발전 전략이 통합된 ‘전환의 설계’이기도 하다.
2.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적 장치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 도구와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첫째, 전환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집단에 대한 선제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고용 보험, 직업 재교육, 전직 지원, 소득 보전 등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둘째, 탈탄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분배 방식이 공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탄소세의 재분배, 에너지 보조금의 조정, 기후 적응 기반 시설 투자 등이 필요하다. 셋째, 전환 과정의 의사결정에 있어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체계가 중요하다. 노동조합, 지역사회, 소수자 단체 등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전환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국제적 차원에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기후위기는 글로벌 문제이지만, 그 대응 능력에는 국가 간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글로벌 정의로운 전환은 선진국의 책임과 연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이러한 정책들은 경제학이 단순히 효율적 자원 배분을 넘어,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참여를 포함한 확장된 틀에서 작동해야 함을 보여준다.
3. 경제학의 확장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
정의로운 전환은 경제학의 역할과 지향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만든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은 기후위기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공동체 중심의 경제 모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경제학이 가치중립적 과학이 아니라, 사회의 방향을 설계하는 ‘정치적 학문’ 임을 재확인하게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그동안 분리되어 있던 환경경제학, 노동경제학, 공공경제학, 지역경제학 등을 하나의 통합된 흐름으로 묶어내며, 단순히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를 넘어서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이것은 경제학이 인간의 삶과 존엄을 다시 중심에 두는 변화이며, 지속 가능성과 공정성이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은 경제학을 더 포괄적이고 윤리적인 학문으로 진화시키는 기회를 제공하며, 오늘날 가장 현실적인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 가능한 전환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뿐이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는 단지 에너지 체계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와 가치 체계, 제도와 공동체에 대한 전면적인 재구성을 요청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그 변화의 방향에 ‘사람’을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이며, 경제학이 다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상상력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끄는 새로운 프레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