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오랜 시간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에만 주목해 왔다. 가격이 붙고 통계로 측정할 수 있는 것들, 즉 화폐로 교환되는 노동과 자산만이 분석의 대상이었고, 그 밖의 영역은 경제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경제학(Feminist Economics)은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이 외면해 온 가사노동, 돌봄 노동, 비공식 부문 노동 등 ‘비가시적인 노동’이야말로 실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숨은 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전담해 온 무급 가사노동은 사회의 재생산과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경제적 가치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여성경제학이 어떻게 전통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지, 가사노동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인식이 어떤 정책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1. 전통 경제학의 맹점과 여성경제학의 등장
전통 경제학은 노동을 ‘시장에 참여하여 임금을 받는 활동’으로 한정해왔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음식을 준비하고, 노인을 간병하는 활동은 노동이 아니며, GDP 산정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가정과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이며, 만약 시장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구매하려 한다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여성경제학은 이와 같은 ‘비시장 노동’이 경제의 핵심 기반 중 하나임을 지적한다. 특히 여성들이 가사와 돌봄의 책임을 자연스럽게 떠안도록 만들어진 사회 구조는, 경제학이 성별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여성경제학은 경제 분석에서 성별 역할 분담을 명시적으로 고려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을 분석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해왔다. 이는 단지 통계상의 조정이 아니라, 경제 개념 그 자체에 대한 재정의 이자, 학문적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흐름이다.
2. 가사노동의 가치와 경제적 기여
가사노동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 인프라다. 식사 준비, 청소, 양육, 간병, 정서적 돌봄 등은 한 가정의 생산성과 사회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활동이다. 여성경제학자들은 이 노동이 무급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가치를 측정하고자 해왔다. 예컨대 ‘대체 시장 임금법’은 동일한 가사노동을 수행할 경우 시장에서 받게 될 임금을 기준으로 가치를 추정하고, ‘기회비용법’은 가사노동에 투입된 시간이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되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을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한다. 이처럼 가사노동의 가치를 수치화하면 국가의 GDP가 수십 퍼센트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이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용 시장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 저임금, 승진 배제 등의 문제로 직결된다. 여성경제학은 이를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경제적 불평등으로 해석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3. 돌봄경제와 정책의 전환
여성경제학은 가사노동을 단지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돌봄 경제(care economy)’라는 새로운 경제 영역을 정립하려 한다. 이는 양육, 교육, 간병, 정서적 지원 같은 돌봄 활동을 하나의 독립적 경제 부문으로 보고, 이에 대해 공공 정책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무급 돌봄 노동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육아휴직, 공공 보육 확대, 유급 가족 돌봄 휴가, 재택근무 제도 등은 돌봄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할 과제로 인식한 결과물이다. 또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노동시장 제도 개편 역시 여성경제학의 영향을 받은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여성의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지속 가능성과 전체 생산성 향상, 사회적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다. 여성경제학은 기존의 생산 중심, 시장 중심 경제관을 넘어,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노동을 경제 바깥에 두고 생각해왔다. 여성경제학은 그런 ‘보이지 않던 경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은 더 이상 부차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모든 경제 활동의 전제조건이다. 이 가치를 인정하고 측정하며 제도화하는 것은, 단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학이 더 인간적인 학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여성경제학은 경제를 재정의하며, 우리에게 ‘가치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